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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기

제목 ,대가야 수도 고령 탐방 등록일 22.12.04 조회 396

대가야 수도 고령 탐방

어느 여행사의 '아주 특별한 여행' 문화탐방이 눈길을 끌었다 대구와 지척이고 비용도 고작 교통비 정도 5천 냥이다 이름하여 문화탐방 고령투어로 당일치기로는 안성맞춤 역사탐방이다

이 비용으로 여행사 수지타산이 되지 않을 것이고 고령군과 연계 지원받는 듯 하다

평일 휴가로 청라언덕역 1번 출구에서 탐방버스에 오르니 동행자는 이 십여명 대부분 여자들이고 노인들이 많아 적잖이 놀랬다 대구서 가까운 비교적 쉬운 탐방이지만 대가야 역사에 관심많은 분들로 보여진다

오늘의 코스는 고령 서남쪽 개실마을 ㅡ고령시장ㅡ대가야박물관ㅡ반룡사

엊그제 강추위도 녹아 바람도 없는 비교적 포근한  날이다

인터넷 백과사전이 언급하기를 '고령 은 경북 남서부 지역 위치한 대가야 도읍지로 가야의 유물과 유적을 간직하고 있다 낙동강을 경계로 달성군, 서쪽의 미숭산755m 북두산을 경계로 경남과 도계를 이룬다

대가야읍에는 고령지산고분군 대가야박물관 우륵박물관이 있다 면적384제곱킬로미터 인구는 3만2천여명 1읍 7개면으로 구성

삼국시대 대가야 도읍으로 김해 금관가야가 쇠퇴한 뒤 가야연맹의 맹주로 세력을 떨쳤으나 562년 신라 진흥왕때 이사부와 사다함의 공격으로 멸망
시조 이진아고왕으로 부터 도설지왕까지 16대 520 년간 존속했다고 전해진다

대가야 건국신화에는 서기 42년 정견모주라는 가야산의 여신과 이비가지라는 하늘신 사이에 뇌질주일이 대가야의 시조 이진아사왕이다
464년 신라의 요청으로 신라를 구원
479년 하지왕때 중국 남제에 사신파견
481년 5세기 150여 년 간 가야의 맹주국으로 백두대간 중심으로 동으로 낙동강 서로는 섬진강까지 진출하고 왜와 중국까지 교류하며 철기문화를 이끌었던 제 4의 제국

522년 이뇌왕은 신라왕족과 결혼동맹으로 신라 이찬 비조부 누이 사이에 태어난 자가 월광태자로 신라 마지막 왕자가 마의태자라면 대가야의 마지막 태자인 셈이다

554년 백제와 함께  관산성(옥천)전투에서 신라에 대패후 급격한 국력쇠퇴

신라 법흥왕 532년 금관가야는 신라에 투항 후 562년 철의 나라 대가야는 제16대 도설지왕때  진흥왕 공격으로 멸망

2021년 전 방영한 kbs 역사스페셜 제 4의 제국 대가야 섬진강 사수작전에는 낙동강을 경계로 신라와 대치하던 대가야는 서쪽으로 활로를 개척하려고 섬진강까지 진격한 대가야의 유물  발견과 활약상이 생생히 조망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으로 채록되고 오래도록 이어지다 보니 학창시절에 배운 삼국 역사가 주류이고 주류 역사의 반의 반  반에도 기록되지 못 한 대가야의 역사를  최근 계속적인 유물의 발견과 관심으로 재조명하고 고령군 등에서 지대한 노력을 기울여 퍽 고무적이다

대가야박물관에서 구수하게 쉬지 않고 설명한 육십대 초반 남자 문화해설사는 고령지산동고분군을 포함 가야 고분군 전체를 유네스코 등재 신청 진행중으로 현재 위원장이 러시아인으로 우크라침공으로 회의를 열지 않고있다니 안타깝다 유네스코 국제 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 대가야의 문화는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을 것이다

학창시절에 배운 역사는 전부가 아닌 일부이고 제대로 배우지 못했음을 자각한다 이번 대가야 수도 고령 문화탐방을 계기로 고려 이전 우리 역사는 삼국이 아닌 사국임을 당당히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가야박물관 내에서 대가야의 깊은 역사를 하루 아침에 배우려니 시간이 너무 짧다 특히 순장제도가 특이했고 그 시절로 돌아가면 금관제조 철기문물 등이 신라에 비해 상당히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왜로 전파되어 그 기술의 우수성을 엿 볼 수 있다

시간적 제약으로 대가야박물관 밖으로 멀리서 지켜본 주산 능선따라 낙타 등처럼 솟은 수많은 왕족 봉분이 엷은 햇살에 파도처럼 일렁이고 금방이라도 대가야 역사가 봉분에서 튀어나올 듯 하다

우스개담으로 요즘 피할거는 피하고 알릴거만 알린다는 현대 pr피알은 기계적이고 사무적이다

옛날에도 자기 피알은 있었던지 호에 은연중 드러난다 점필재 김종직은 지극히 자신을 낮춰 호를 점필재라 칭했다

그 점필재 후손들 집성촌이 고령 서남단 모퉁이 합천과 경계를 이루는 곳에 둥지를 틀고있다 이름하여 개실마을이다

사림의 대학자를 기리는 개실마을을 둘러보면 비록 종중이 아니라도 조선 중기때 대 학자의 면면을 둘러보고 옷깃을 여민다

그가 살아온 길은 단절의 역사가 아니라 문중을 통해 역사를 거쳐 오늘에 지방자치단체 등의 협력으로 계속 이어진다

솟을대문을 지나면 고택이 즐비하고 기둥 하나 하나에 사연과 역사가 서려있다

세종때부터 성종때까지 이어진 영남 사림의 태두 김종직 대학자는 형조판서 및 사후 영의정 추존 이면에는 조의제문으로 연산군때 부관참시 무오사화를 겪었지만 지방에서 후학배출에 지방 수령으로 공사를 구분 관리들의 표본이 되었다
조그만 유물관에는 교지와 임금이 하사한 술병 등이 그의 위상을 알려준다

하지만 야인 김종직으로 돌아가면 필부와 다를 바 없이 그 당시 질병과 빈곤으로 자식들을 먼저 보내고 모친 사망과 첫째부인을 동시에 잃고 후일 재취하여 뒤늦게 아들을 얻은 기쁨도 있었지만 62세에 사망할때까지 평탄치 못한 삶의 질곡이 대단했으리라 여겨진다
권력은 유한하고 인생은 짧거나 결코 길지 않다

문화해설사 얘기로는 '개실마을은 예전 전국 마을 가꾸기 경연에서 1등으로 그 당시 제법 많은 일 억을 마을에서 받았으나 개별적으로 배분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마을을 발전할 수 있도록 뜻을 모아 군청에 위탁하여 찾아오는 문화관광마을로 군청과 마을 사람들이 협심하여 오늘에 이르고 매년 체험 문화마을 방문객이 상당하다고 하니 지하의 점필재 선생이 흐뭇할 듯 하다

고령 문화투어 점심은 자유시간 발 길 닿는대로 고령시장을 위주로 밥 한끼 먹으러 대가야읍내를 한 시간동안 주만간산격으로 걸었다 특색있는 지역 먹거리 특히 손국수를 찾았으나 최소 2인이상  판매라 아쉬웠다 이제 시골 인심은 찾아볼 수 없다 짬뽕 한 그릇 먹으려고 고령시내를 다닐 필요는 없다 결국 꽈배기로 길 위에 세 게눈 감추듯 먹고 마지막 코스 반룡사로 향했다

겨울 낮이 짧아 해는  산속 위로 달리고 버스는 고속질주한다
반룡사 관세음보살 앞면을 바라보며
조금 떨어진 사찰 입구 무인 카페 사방에서 찬바람이 들어온다 1회용 믹스커피 한 잔이 뜨뜨미지근하다  물이 차지도 뜨겁지도 않다 무미건조 무념무상 무상무취 맛을  필부는 느낄 수 없다 그저 달짝 지근한 한 잔의 커피맛을 그리워하니 산사에는 아무나 들어갈 일이 아니다

스님 도포보다 엷고 가는 초겨울이 저물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