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의 끝자락 31일에 작가 이효석의 고향인 강원도 봉평을 찾아갔다.
모처럼 만에 옆지기의 운전이 아닌 대구여행자클럽을 통한 버스여행이다. 앞으로 자주 이용할 요량으로 회원 가입까지 하고 여행 신청을 했었다.
그런데 어젯밤 여행의 설렘으로 잠을 설친 탓인지 자리에 앉자마자 눈이 실실 감기기 시작한다. 가을이 창밖에서 손짓을 하고 있는데 졸다니 쯧쯧… 다시 눈을 부릅뜨고 차창 밖을 내다보며 역시나 초가을이 어서 오라고 반기고 있었다.
그러나 고속도로는 벌초 차량의 물결로 버스는 거북이걸음, 예정보다 1시간 30분 정도 늦게 도착한 첫 번째 여행지는 물이 맑기로 소문난 흥정계곡 옆에 자리잡고 있는 허브나라 농원이었다.
농원입구부터 허브 향내가 코끝을 자극한다. 허브정원, 향기정원 등을 돌아다니며 이름모를 수많은 꽃 속에 파묻혔다. 꽃과 내기하듯이 예쁘게 폼 잡고 사진도 찰카닥! 또 향기나는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머얼리 꽃수레가 보인다. 얼른 가서 수레 끌며 또 찰칵!
또 한 가지! 허브나라에서 보석같은 아름다운 글귀와 만났다. 법정스님의 말씀이다. 옮겨 적어보면
‘사람에게도 그 사람 나름의 향기가 있을 법하다. 체취가 아닌 인품의 향기 같은 것. 그럼 나는 어떤 향기를 지녔을까? 내 자신은 그걸 맡을 수 없다. 꽃이 자신의 향기를 맡을 수 없듯이, 나를 가까이하는 내 이웃들이 내 향기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잠시 허브나라의 주인공이 된 듯 허브향기에 취했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이효석의 생가가 있는 봉평,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입구에 있는 식당에서 가이드에게 물어보고 선택한 메밀 전병과 메일 막국수로 맛있게 점심요기를 하며 이 곳이 메밀꽃의 봉평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러나 아쉽게도 봉평을 들어서면서부터 온통 소설 속의 메밀밭이 펼쳐져 있었으나 안타깝게 꽃이 핀 곳은 거의 없었다. 소금을 뿌린 듯, 달빛에 숨이 막힐 듯 하다는 메밀꽃이 보고 싶어 오래 전부터 벼루고 별러서 간 봉평이었으나 또 다음을 기약하는 수 밖에… 이효석 문학관을 돌아 나오며 아쉬운 마음에 새파란 메밀밭에서 애꿎은 사진이나 한 장 박고 다시 발길을 대관령으로 돌렸다.
대관령 양떼목장!
목장을 한 바퀴 도는 데 1시간 정도 걸린다는 가이드의 말에, 점심도 먹었겠다 배도 꺼줄 겸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일행 중 일부는 중간으로 도는 길로 빠지고 나머지는 모두 목장 길 따라 발걸음도 가볍게 트레킹을 시작했다.
구름이 산허리를 감돌고 있는 목장은 정말 알프스에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 속에 빠져들기에 충분했다.
산책로를 따라 가다 보니 풀밭 위에 점점이 박혀있는 듯한 양떼들이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가서 보니 새하얀 양들이 아닌 거의 짙은 회색에 가까운 지저분한(ㅋㅋ)양들이 풀밭에서 한가로이 노닐고 있었다. 그래도 처음 보는 양떼라 그 녀석들 앞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영화 '양들의 침묵' 이 생각날까? 전혀 아닌데…
고개를 도리질하며 목장 길을 따라 내려오니 양들에게 먹이를 주도록 만들어 놓은 곳이 있어 건초를 한 소쿠리 받아와 줄려니 고것도 동물이라고 물까봐 겁이 나서 도저히 못 주겠다. 그 덕분에 옆지기가 내 몫까지 잘 챙겨주었다. 양들은 고맙다는 듯이 잘도 받아먹는다.
‘난 사진이나 찍어야지, 찰카닥!’
목장 주변 풀밭에는 마타리 등 들꽃들이 지천에 널려 있었다.
봉평 메밀꽃 구경을 못한 아쉬움을 여기서 다 푼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양떼 목장을 돌아본 후 이제 이번 여행의 끝을 맺는 영화 '웰컴투 동막골' 촬영지를 찾았다.
영화의 장면을 생각나게 하는 곳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었는데 한 가지 의문스러운 것은 입구에 세워진 커다란 가짜나무인데 그 한 그루를 만드는데 무려 3200만원이 들었다고 했는데 그 돈이면 진짜 나무를 사도 많이도 살 텐데 왜 그랬을까? 아직도 이상하다! 잘못 들었나?
그리고 촬영지 입구에서 사먹은 강원도 옥수수, 지금 생각해도 고소한 내음이 입 속에 가득하다.
자! 이제 머리 속에, 눈 속에, 그리고 사진 속에 꼭꼭 채우고 또 한 장의 추억쌓기를 하였으니 대구로 출~~~발~~~
집으로 오는 길은 몸도 마음도 파김치가 되어간다.
그래도 마음은 벌써 또 다음 여행을 기대하며…
덧붙임! 이렇게 편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안전 운전해 주신 기사님께 감사드리며, 우리 아들과 같은 나이라는 유경민 가이드님, 안내하랴, 이사람 저사람 사진 찍어주랴, 인원 점검하랴, 정말 수고가 많았습니다. 항상 초심으로 열심히! 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