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단종의 슬픔이 서려있고 왕방연의 시조가 가슴을 아리게 하는 청령포…
8월 30일 덤으로 붙어있는 제5 일요일에 우린 청령포를 찾아갔다.
여명이 밝아오고 있는 시각,
아직도 자동차들은 환하게 불을 켜고 달리고 있는 새벽에 신세계웨딩 앞에 도착하니 와우! 일등이다!
6시, 버스는 어김없이 1분의 오차도 없이 출발하고 언제나처럼 동핑, 성서 홈플러스 앞에서 나머지 여행객들을 태우고 달리기 시작한다. 오늘 예약한 분이 30명이라고 하니 여행자클럽을 몇 번 이용한 여행 중 가장 적은 인원이다.
첫 번째 도착한 휴게소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차에 오르니, 또다시 버스는 열심히 달려 청령포 입구에 도착하였다.
청령포는 서강이 삼면에 흐르고 뒤쪽은 육육봉이라는 험준한 암벽으로 둘러져 있어 마치 섬같이 생긴 지형으로 그곳에 들어가려면 나룻배를 이용할 수 밖에 없는 곳으로,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서 왕위를 찬탈당하고 유배되어 고립된 생활을 한 곳이니 정말 역사적인 장소이다.
청령포에 들어가기 위해 배에 오르자마자 뱃머리를 돌리니 바로 도착이다. 헤엄을 잘 치는 사람이면 금방 건널 수 있을 것 같은 거리다.
제일 먼저 단종어가에 들어가니 목소리도 청아한 문화해설사님이 역사적인 여러 가지 사실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해설사님 말씀처럼 요즈음 사람의 눈으로 보면 별장같은 곳이지만 그 옛날 나이어린 단종이 유배되어 왔을 때는 얼마나 무섭고 슬픈 곳이었겠나?
단종어가는 소실된 어가를 2000년 4월 5일에 건립하였으며 마당 한가운데 담묘재본부시유비가 모셔진 비각이 있었는데 이 자리가 바로 어소가 있었던 자리라고 하며, 더욱 신기한 것은 담장 밖에서 보면 아름드리 소나무 몇 그루가 이 비각을 향하여 엎드린 것같이 자라고 있는 데 그 모습이 마치 소나무가 단종 임금께 알현하는 것처럼 보였다.
해설사의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뒷산에 오르니 먼저 망향탑이 눈에 들어온다. 단종이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막돌을 쌓아 올린 탑인데 단종의 남긴 유일한 유적이라 하니 한이 서린 돌탑이라 할만하다.
다시 조금 더 올라가니 깎아지른 절벽이 눈앞에 들어온다. 앞으로는 강물이 뒤로는 절벽이… 얼마나 숨이 막혔을까?
노산대 쪽은 공사중이라 가 보지 못하고 슬픈 단종을 생각하며 언덕을 내려오니 관음송이 보인다.
관음송은 수령이 600년 정도로 추정하며 높이가 30m, 밑둘레가 3.3m나 된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소나무다.
두 갈래로 갈라진 이 소나무에 단종이 앉아 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또 단종의 오열하는 소리도 들었다고 하여 관음송이라고 불리워 왔다고 한다.
그 다음 본 금표비는 이곳이 유배지이므로 일반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표시로 사실은 단종의 행동을 제한하는 금지령에 대한 기록을 적은 것이라고 한다.
청령포를 벗어나며 뒤돌아보니 소나무만이 단종의 슬픔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유배지를 감싸고 있었다.
다시 배에서 내려 버스 쪽으로 가다보니 ‘욕심을 버리는 집’ 해우소 앞 둥근 돌에 새겨진 왕방연의 시조가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금부도사로써 어명에 의하여 단종에게 사약을 올려야만 했던 그였기에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으리라…
고등학교 다닐 때 배우고 외웠던 시조를 다시 소리내어 읊으며 고운님 단종을 기리며 청령포를 벗어나 선돌로 향한다.
선돌 입구에 들어서자 이 아름다운 곳이 영화 ‘가을로’ 의 촬영지였음을 알리는 안내판이 커다랗게 눈에 들어온다.
서강을 옆에 끼고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선돌!
선돌과 주변의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마치 한 폭의 한국화 속으로 쏘옥 들어간 것 같다.
거기다 풍경화의 주인공 되라고 가이드 박지숙 양이 사진이 가장 잘 나온다는 포토존 자리에서 증명사진까지 찍어 주었다. 고마워요~~~!
선돌을 돌아나와 버스를 타려다 문득 이정표를 보니 이 곳의 이름이 소나기재이다.ㅎㅎㅎ
우리나라 지명 중에 이상한 또는 웃기는 이름이 많은데 이 소나기재도 그속에 넣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선돌의 풍경을 눈 속에 가득 담은 우리는 또다른 역사의 현장 단종의 무덤 장릉에 도착하였다.
다음 일정인 기차 시간 때문에 구경도 뒤로 미룬 채 11시도 안된 시간에 먹은 점심, 아니 아점이다.^^
어쨌든 이 곳의 명물인 곤드레밥에다 갖가지 산나물반찬을 곁들인 영양식으로 맛있게 먹었다.
식사 후 장릉은 몇 번 가 봤다고 생략하고 장릉 뒤쪽으로 부른 배도 꺼줄 겸 산보를 나섰더니, 어라 여기에도 숨은 보물이…
삼족을 멸한다는 엄명이 내렸음에도 아랑곳 않고 단종 임금의 시신을 거둔 충의공 엄흥도를 기리는 기념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몇 번 왔어도 이곳은 처음이라 오히려 신이 났다.
몇 년 전 대학동기회에서 장릉을 찾아왔을 때 엄모씨가 자기의 조상이라고 자랑하던 일이 문득 생각났다.
기념관 앞에 있는 충절의 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다 보니 기념관 뒷길로 ‘영월장릉물무리골’ 생태학습원이 보인다.
생태학습원에 들어서자 이름모를 여름들꽃들이 웃으며 반겨 맞는다. 시간이 너무 짧은 게 안타까웠다. 멀리 가보지도 못하고 돌아왔다. 진작에 이런 곳이 있는 줄 알았으면 좀 더 빨리 가보는 건데… 역시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이 딱 맞는 말이다.
아쉬움을 남긴 채 영월역에 도착하니 아담한 시골 간이역 분위기이다. 역사는 마침 공사중이었고, 방랑시인 김삿갓 조각상이 홀로 손님들을 맞는다.
영월역! 아! 우리는 거기서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가이드 박양이 찍어준 철로 위의 두 남여! 바로 옆지기와 나! 진짜 사진이 너무 멋있게 나왔다. (위에 사진 보이시죠? 진짜 괜찮지 않나요?)
출연자와 연출자의 호흡이 딱 맞은 이 사진만으로도 오늘 여행은 성공이다.ㅎㅎㅎ
12시 7분, 영월에서 증산역까지… 정말 오랜만에 타 보는 기차다.
약 50분가량 가는 동안 기차는 차창 밖으로 아름다운 강원도의 경치를 마음껏 보여주었고, 이름모를 들풀과 빨갛게 익어가는 수수, 푸른 숲과 계곡들은 우리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증산역에 도착하니 역사 지붕에 붙은 프랜카드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9월 1일부터는 증산역을 민둥산 역이라고 불러달란다. 네네! 잘 알겠어요! 이 곳에 있는 민둥산은 억새가 유명하단다.
민둥산역에서 기다리고 있는 버스에 올라 다음 여행지 함백산으로 간다.
사실 나와 옆지기, 이번 여행의 주목적은 함백산 야생화이었고 처음 가는 곳이라 무척 기대가 컸다. 이미 야생화 축제기간은 끝났다고 하지만 꽃이 어디 축제기간에만 피겠느냐!
차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라는 함백산 만항재에 도착하여 야생화 군락지로 들어서니 정말 많은 들꽃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이름도 가지가지! 물양지꽃, 마타리, 동자꽃, 벌개미취, 물봉선 등등등, 그 꽃 속에 나도 있었다.
때마침 는개비가 살살 날리고 바람이 불어 한기마저 느끼며 들꽃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에는 야생화 축제기간에 널 찾아오리라 약속하면서…
함백산을 내려오다 들린 적멸보궁 정암사!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해 놓았기 때문에 대웅전에는 부처님이 없다고 한다.
대웅전에 참배하러 들어갔더니 진짜 방석만 놓여 있었다. 언덕 위에 있는 수마노탑은 용왕이 보내준 보석 마노석으로 쌓은 탑이라고 하며, 절 입구에 있는 주장자나무는 자장율사가 정암사를 창건하시고 사용하시던 주장자를 꽂아 신표로 남기신 나무라고 한다.
정암사 입구에서 또 증명사진 남기고 이번 여행의 마지막 장소인 한반도 지형으로 간다.
한반도 지형! 정말 신기하다.
어쩌면 저리 우리의 땅덩어리 모양과 비슷한지! 우리의 꽃 무궁화까지 심어놓아 한층 더 감동을 더해 주었다.
우린 서로 '옆지기는 독도 자리에, 나는 제주도 자리에' 하면서 사진찍어주기 바빴다.
여기까지 오늘 여행 끝! 오늘 하루 정말 많은 곳을 다녔다.
역사적인 곳이거나 경치가 아름다운 곳 등 어느 한군데도 빠트릴 수 없는 참한 여행지였다.
이 모든 곳을 구경할 수 있게 해준 여행자클럽에 감사드리고 수고해 주신 기사님 그리고 박지숙 가이드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여행기를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