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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보성녹차밭&낙안민속마을&선암사 | 등록일 | 09.05.31 | 조회 | 4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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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길을 떠난 곳이 보성녹차밭이었다. 비온 뒤 산을 휘감으며 도열한 차나무는 깨끗한 초록의 싱그러움으로 더없이 산뜻한 모습이었다. 먼 산은 간밤에 내린 비의 잔영으로 안개에 젖어 아늑한 신비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제1다원은 산 아래 드넓은 평원에 단정한 녹차밭이 펼쳐져 있고, 멀리 은빛 바다가 반짝이고 있었다. 제 2다원은 산자락에 계단식으로 이루어진 녹차밭이 참으로 신산한 풍경이었다. 하늘에 닿을듯 수직으로 곧게 뻗은 삼나무길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초록의 향연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차밭이 아니라 숲의 정령들이 가꾸어 놓은 듯한 청신한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녹차밭을 따라 돌멩이가 구르고 풀이 자라는 숨쉬는 흙을 밟는 기분은 편안하면서도 정겨운 느낌이었다. 길가에 무리지어 피어있는 크로바꽃으로 꽃반지를 만들어 밋밋한 손가락에 끼워 보니 편안하게 어울리는것 같았다. 꿀벌이 들꽃향기를 날아 다니고, 무당벌레가 녹차잎에 앉아 있는 모습은 참 평화로보였다. 나는 그곳에서 나무가 되고, 푸른 숲이 되고, 바람이 되고, 비안개가 되고, 은빛 바다가 되고, 맑은 햇살이 되고, 부드러운 흙이 되는 느낌이었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호흡할 때 인간은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는듯하다. 나와 다른 것을 분별하지 않고 구분하지 않으며 나와 자연이 하나가 되는 일체감은 참으로 경이로운 느낌이었다. 이름 모를 풀꽃들과 숲의 향기를 마시면 내안에 꽃이 되고 숲이 자랄것만 같은 착각이 들게 하는 그런 자연스러운 어울림이 물아일체가 아닐까! 언제나 그자리에서 모든것을 품어주고 받아주는 자연속에서 나는 내가 아닌 자연이 되어 모든것을 넉넉하게 품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것은 그 순간의 마음일지라도 내가 순하고 부드러워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듯 하였다. 나의 일상이 편협하고 날카로운 모양일지라도 나를 위한 변명을 자연은 허락하는듯 하였다. 낙안민속마을은 낙안읍성안에 초가집들과 토담을 쌓아 옛스러운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곳 있었다. 초록이 무성한 담쟁이 넝쿨은 토담을 감싸며 번져가고 담장 안에 키 큰 감나무와 석류나무는 바깥세상을 향해 푸른 가지를 내밀며 한가로운 바람을 흔드는듯 하였다. 수줍게 피어나는 살빛 감꽃은 문득 어린시절 무명실에 감꽃을 꿰어 꽃목걸이를 만들기도 하고 달싸한 감꽃을 따먹던 해맑은 오월의 붉은 장미를 담장 위에 이고 있는 화려한 돌담의 풍경은 나도 장미 화관을 두르고 싶은 충동을 갖게 하였다. 돌담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속에서 그날 하루를 위한 장미빛 즉흥을 만족할 수 있었다. 골목길을 걷다보면 다채로운 정경들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데 토담 아래 작은 텃밭에는 토란과 더덕이 토속적인 시골의 옛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시인의 집이란 작은 표지를 보고 들어간 마당 깊은 뜰에는 하이얀 마가렛꽃이 소담스럽게 피어 있었다. 시인을 만나진 못했지만 마가렛꽃이 내 마음에 아름다운 시가 되어 주었다. 마을 연못엔 비단 금붕어가 한가로이 하오의 햇살속에 헤엄을 즐기고, 고운 수련은 이제 막 봉우리를 피워 우아한 자태를 물위에 띄우고 있었다. 성벽 위를 걸으니 마을의 둥근 초가지붕이 한 눈에 들어오고, 성벽에서 내려다본 낙안읍 평원엔 금빛 보리가 풍요롭게 일렁이며 추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암사는 신선이 내려와 바둑을 둔 바위가 있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승선교의 무지개 다리 아래로 흐르는 맑은 계곡물은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흘러 세상의 번민을 씻어주는듯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이었다. 계곡을 따라 신록의 터널은 상쾌한 나무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산사의 고요한 기운이 참으로 평온하게 느껴졌다. 절당엔 저마다의 기원을 담은 색색의 연등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둥근 연등처럼 그들의 소망이 모나지 않게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대웅전을 지나 절당 한켠에 눈길을 끄는 소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몇 백년은 되어 보이는 그 소나무는 그 옛날 거센 비바람 탓인지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강인한 생명력은 수직으로 자라는 대신 수평으로 건재한 모습이었다. 오랜 세월, 결코 순탄하지 않은 역경을 이겨내고 의연하게 푸른 소나무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겸허해지는 것 같았다. 엄마와 함께 떠난 이번 여행은 내게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오월의 초록이 숨쉬는 녹차밭을 거닐며 노천명의 시를 낭송하는 엄마는 참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고단한 삶속에서도 순수한 감성을 지키며 늘 긍정적이고 온화한 엄마는 나의 소중한 친구이다. 일상이 낮설게 느껴지거나 내 생각이 뜻대로 되지 않아 멈춰버린 시계처럼 답답함을 느낄 때 그냥 어디든 떠나고 싶어 진다. 새로운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연스런 기운을 호흡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고장난 마음의 시계가 다시 제 시간을 알려주고 내안의 감성과 생각을 흔들어 깨워준다. 그리고 다시 일상의 주어진 삶을 겸손하게 살게한다. 푸른 오월 노천명 청자(靑瓷)빛 하늘이 육모정[六角亭] 탑 위에 그린 듯이 곱고, 연못 창포잎에 여인네 맵시 위에 감미로운 첫여름이 흐른다. 라일락 숲에 밀물처럼 가슴 속으로 몰려드는 향수를 긴 담을 끼고 외딴 길을 걸으며 걸으며, 풀 냄새가 물큰 청머루 순이 뻗어 나오던 길섶 아름다운 노래라도 부르자. 보리밭 푸른 물결을 헤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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