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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5월 5일 남이섬, 쁘띠 프랑스, 양평 영어마을 | 등록일 | 09.05.17 | 조회 | 6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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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차를 달려 우리는 남이섬으로 출발했다. 잘 닦인 도로를 달리는 동안 새벽부터 설치느라 모자란 잠을 위해 눈을 잠시 붙였다. 버스를 타고 몇 시간씩 달리는 일은 사실 내게 힘든 일이다. 만성 멀미, 그것은 강산이 몇 번씩 바뀌며 강산이 허물어지고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고 강남 땅값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동안에도 결코 나아지는 법이 없었다. 작년에 처음 여자 친구의 전폭적인 지지로 대구 여행자 클럽을 통해 함께 피크닉을 가기로 했을 때도 사실 그리 내켜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때의 경험은 전혀 고되지도 않았고, 너무 즐거워서 오히려 그 다음에는 내가 먼저 가자고 하게 되었다. 이번 남이섬으로의 여행도 사실 내가 먼저 제안한 것이었다. 우리는 옆자리에 앉아 과거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잘생긴 가이드가 틀어준 최신 영화도 봤다. 그 동안 시간은 구렁이 담 넘듯이 슬그머니 지나가버려 정신 차리면 이미 예정 도착지에 와 있었다. 남이섬에 도착하자, 점심시간이 약간 덜 되었다. 가이드는 충분한 시간을 주었고, 우리는 비밀리에 가이드에게서 입수한 지도를 보며 남이공화국를 깡총거리며 부부 스파이처럼 정탐했다. 넓은 잔디들이 보였고, 아이들이 밀려있는 숙제도 잊은 채 뛰놀고 있었다. 이곳은 겨울연가로 유명한 로맨틱한 곳이지만, 요즘 미드 로스트에 푹 빠져 있는 여자 친구는 어쨌든 조금 다른 상상을 하고 있었다. 돌아오지 않는 남이섬의 배. 한명씩 사라지는 관광객들. 이곳은 무인도가 아니었어! 꺄악. 관광객들은 로스트의 주연들의 몇 갑절은 되었기에, 아마 시즌 10까진 무난히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메타쉐콰이어길에서 NBA에 진출해야할 만한 덩치를 가진 나무를 사이에 두고 사진을 찍었다. 호수 앞에선 남이공화국 국조로 보이는 듯한 오리들이 꽉꽉대지도 않고 청초한 자태로 깃을 가다듬고 있었다. 아마 오랫동안 섬에만 있어서 자신들이 백조인 줄 아는 것 같았다. 배가 슬슬 고파지자, 센스가 브루스 윌리스 뺨칠 정도인 내 세븐 센스 여자 친구는 정성스럽게 ‘사온’ 김밥천국 김밥을 내놓았다. 나무 그늘 아래의 나무 탁자에 사이좋게 나란히 앉아 김밥을 얌얌먹고, 나는 여자 친구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이대로 배가 끊기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배는 오 분 간격으로 있었다. 다음에 도착한 쁘띠 프랑스는 프랑스의 어느 마을을 본 어느 한 젊은이가 (사실 젊은이인지 늙은이인지 확실치는 않다.) 이것을 그대로 옮기고 싶다는 포부로 그곳의 건축가를 불러 그곳의 자재로 지었다고 한다. 나는 프랑스의 노가다 아저씨들이 샤넬 러닝셔츠를 입고는 막걸리대신 포도주로 나발을 불어가며 일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어린이 날이어서 그런지 아이들이 많이 보였다. 아이들은 지나가는 길목에서 메타쉐콰이어만한 비눗방울 불어대고 있었다. 내가 위협적으로 째려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자, 나는 포기하고 백기를 들고 비눗방울 파편을 온몸으로 맞으며 길을 건넜다. 항복한 적군에게도 무차별적으로 발포하다니, 유엔협정도 모르는 꼬맹이 같으니! 우리는 가이드가 추천해준 대로 와플을 먹으러 카페를 찾아갔다. 그곳에는 희한하게도 벨기에식 와플을 팔았다. 아니 왜, 프랑스에서 벨기에식 와플을 팔지? 혹시 벨기에와 자유 와플 교역 협정이라도 맺은 건 아닐까. 나는 사장님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게다가 내가 시킨 카라멜 생크림 와플대신 초코 생크림 와플을 만들고 있었다. 저것도 벨기에식 유머인가. 차갑고 잔인하며 유니크한 유머군. 나는 언젠가 본 지루한 유럽영화의 이해가 가지 않는 유머를 떠올렸다. 어쨌든 잘 받아 챙겨들고 여자친구에게 가려는데 여자 친구가 앉은 테이블 주변에 아이들이 둘러싸고 쿵짝쿵짝 하고 있었다. 아마 비눗방울 불다가 여기까지 온 모양이었다. 갑작스런 협동 테러에 언제나 침착한 여자 친구마저 당황하여 침을 흘리며 멍하게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산 속을 걷다가 코카콜라를 든 북극곰이 나타나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누워서 죽은 척을 하며, 콜라는 사실 코크보다는 펩시지 하고 중얼거리며 할 말은 하는 여자 친구다. 그런 내 여자 친구를 마치 아내의 유혹 마지막 편을 보듯이 얼어붙게 만들다니, 어린이들의 힘은 역시 위대했다. 마지막 행선지는 양평 영어 마을이었다. 들어가는 입국 수속대에 가이드가 여권을 나눠줬다. 없으면 쫓겨나는 건가 싶어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들고는 조심스레 펼쳐보자, 무슨 오늘의 영어 한마디 같은 것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영어 마을이라 길래 들어가는 순간 금발의 뉴요커들이 와썹하며 반겨주며 스타 벅스 커피라도 한 잔하는 줄 알았는데, 그냥 한인 타운이었다. 여기가 그 유명한 ‘꽃보다 남자’ 촬영지라고 했다. 우리는 F4가 앉았던 책상에 앉아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대한민국 안에서 이런 이국적인 거리를 걷을 수 있다는 게 감동이었다. 나는 각도를 잘 재어 마치 유럽 여행을 하고 온 듯한 테크닉을 구사하여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어디서나 활개를 치는 부지런한 한인들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 했다. 나는 에라 모르겠다. 코리아 파이팅을 외치며 그냥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우연히 컵 떡볶이를 들고 있는 유경진 가이드를 만났다. 나는 단순히 단전 깊숙이 ‘먹고 싶다’라는 염력을 불어넣었을 뿐인데, 유경진 가이드는 휘리릭 날아와, 이런 엄청난 기운은 오랜만이군요. 하며 컵 떡볶이를 건네고는, 차가운 도시남자지만 알고 보면 따뜻한 드라마 주인공처럼 사라졌다. 나와 여자 친구는 옹헤야를 테크노 리믹스로 부르며 떡볶이를 얌얌 먹었다. 정말 유머감각도 있고 친철한 가이드였다. (사실 이걸 쓰고 싶어서 여기까지의 여정을 기록한 것이나 다름없다.) 돌아오는 길도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우리는 차 안에서 영화를 보고, 아이 팟으로 음악을 듣고, 찍은 사진을 확인하고, 오늘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대한민국에는 참 좋은 곳이 많다. 나는 벌써 다음 여행을 계획했다. 이것이 여행하는 사람들의 즐거움이겠지. |